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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아일랜드

by 유체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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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모든 것이 좋았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9년 여름, 무슨 흐름이었는지 8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서른이 훌쩍 넘을 때까지 해외여행이라고는 일본밖에 가본 적 없는 나는 영어권 나라를 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공항 출입국부터가 큰 걱정이었다. (당시에는 K-컬쳐가 지금만큼 부흥하지 않았고...) 하지만 무슨 용기였는지 괜찮은 시기와 괜찮은 날씨에 퇴직금을 모두 털어 핀에어를 끊고 숙소를 예약했다. 그 용기의 원천은 아마도 아일랜드에 친구가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더블린의 모습. 이층 버스가 지나간다. 거리는 깨끗하다.
더블린의 모습. 버스 광고 중인 리버댄스도 보았다.

 

1. 아일랜드는 아름답다

나라 이름이 좋다. 섬(Island)이라는 단어와 같은 발음이지만 표기는 Ireland이다. 영국의 왼쪽에 위치한 섬나라인데 아직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했고 대부분이 영어를 쓰지만 원어인 아일랜드어 (게일어)도 잘 보존되고 있는 편이다. 수도는 더블린, 기네스 맥주가 유명하고 제임스 조이스나 오스카 와일드 등 유명한 문호도 많으며 롱룸 도서관이 있는 트리니티 대학은 유서가 깊다. 나에게는 원스, 싱스트리트 등의 존카니 감독 영화로 더 흥미가 있다. 원스의 글렌 핸사드, 싱스트리트의 퍼디아 월시 필로 둘 다 아일랜드 배우이다. 좋아하는 영화인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도 아일랜드 배우라 하니 아일랜드 출생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음악을 잘하는 것일까. 비교적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게 한도 많고 흥도 많고 모두가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펍(PUB)이 유명한 것도 그 연장선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면 으레 펍같은 장소가 생기기 마련이다. 가장 유명한 템플바는 물론이고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펍도 늘 북적북적하고 라이브도 자주 한다. 전통악기인 일리언 파이프와 바우런, 휘슬 등의 연주도 종종 들을 수 있다. 내가 만약 술을 좋아했다면 매일 저녁 마실 삼아 갔을 것이다.

자연도 더할나위없이 멋지다. 더블린은 물론이고 조금 외곽으로 벗어나면 호스(horth), 달키(dalkey), 조금 더 나가면 골웨이(galway), 둘린(doolin) 등 내가 갔던 곳은 모두 좋았다. (뚜벅이로 갔다면 힘들었을 곳까지 차로 태워준 그들에게 감사한다) 도로가에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거대한 모허의 절벽이 있는 그곳. 수많은 곳이 좋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서퍼들을 많이 보았던 라힌치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 여름이라 그런 것 같다.

 

2. 모허의 절벽 (Cliffs of Moher)

모허의 절벽. 로모로 찍은 사진.
모허의 절벽. 도착전에 비가 왔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졌다. 너무 멋진 광경.

아일랜드의 서쪽에 위치한 모허의 절벽은 정말 거대한 장관이었다. 제주도에서 단 하나의 관광지를 꼽으라면 한라산이라 말할텐데 아일랜드는 단연코 모허의 절벽이다. 깎아지른 절벽이 무한대로 이어지고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있어 나로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자연에 압도당했다. 그렇게 가파른 절벽에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가갈수록 공포심이 생기니 굳이 그런 게 필요 없었을 것도 같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사진 찍으려고 하다가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흔히 절벽 끝에서 엎드려 고개만 빼꼼히 아래를 쳐다보는 행동을 많이 하는데 나는 무서워서 100미터 밖에 멀찍이 서있었다. 이곳은 조류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신기한 새도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투칸이었나...) 아무튼 모허의 절벽을 방문한다면 골웨이, 아란제도, 둘린 정도를 묶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3. 크랜베리스 (Cranberries)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뮤지션이라고 하면 역시 U2일 것 같다. 고척돔에서 열렸던 내한공연도 갔었는데 연주도 노래도 영상도 좋아서 (가파지른 고척돔의 좌석만이 조금 불안했을 뿐이었다) 그들 음악의 상징적인 의미와 메시지는 나의 짧은 영어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아이리쉬다운 밴드는 크랜베리스이다. 차를 타고 골웨이로 가는 도중 리머릭을 지날 때 여기서 크랜베리스가 탄생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기억에 남기도 하다.

크랜베리스는 1989년 리머릭에서 결성되었고 보컬인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목소리가 가장 특징적이다. 중경삼림에 나왔던 dreams와 도입부가 유명한 ode to my family로 기억한다면 드림팝에 가까울지 모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얼터너티브 느낌의 zombie이다. zombie는 보컬이 여성이면 열의 아홉은 커버를 했을 정도로 당시 초보밴드들에게 유명한 곡이었다. 연주가 아주 어렵지 않으면서 나름 무게도 있어 멋 내기에 좋았다. 하지만 돌로레스처럼 특징이 뚜렷한 보컬은 잘해도 따라 한다는 느낌이 많아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사실은 어려운 곡인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돌로레스의 숏컷과 워커의 이미지를 좋아했고 아일랜드의 자연을 떠올리게 만드는 linger를 좋아했다. 돌로레스는 2018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2019년 마지막 앨범 발매 후 해체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야깃거리가 많은 더블린 이야기를 막상 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 기억을 떠올려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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