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가고 싶다고! (못 감)
입춘이 되면 제주에서는 입춘굿을 한다. 정확히는 거리굿, 열림굿, 입춘굿으로 3일 동안의 봄맞이 축제인 셈이다. 입춘이라는 절기를 기념한다는 생각은 제주에 오기 전까지 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이 들썩한 행사 때문에 입춘이 기다려진다. 올해는 비록 못 가게 되었지만 제주의 전통에 관심이 있다면 이 흥겨운 축제를 경험해 보시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1. 입춘굿이 머우꽈
(*아래 내용은 작년 입춘굿에서 받은 가이드북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입춘굿은 봄맞이 풍요 기원 축제이다. 오래된 농경문화의 내력이 있는 곳이라면 중국, 일본등의 아시아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도 입춘굿과 비슷한 농경의례가 있었다고 한다. 제주도의 경우는 탐라국 시절부터 왕이 직접 제사장의 역할을 맡아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를 펼쳤던 유서 깊은 풍속이었고 후대로 오면서 풍농을 기원하는 의식이 무속 굿으로 바뀌고 탈굿놀이가 삽입되는 과정이 생기기도 했다.
제주의 입춘굿은 탐라국이 고려에 복속된 후 위상이 낮아졌고 조선의 멸망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다 1999년 민속학자 문무병을 중심으로 제주민예총(https://jepaf.kr/)이 복원을 시도했고 명맥이 끊긴 전통사회의 입춘굿을 현대에 맞게 부활시켰다. 제주도 굿 본연의 신앙적인 요소에 시민사회의 화합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은 물론 모두가 체험하며 즐기는 도시축제로 정착을 꿈꾸고 있다.
입춘굿을 하는 장소는 목관아와 관덕정인데 예부터 제주목의 행정을 총괄하던 관리들의 집무처이자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관덕정은 조선 세종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제주의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입춘굿뿐만 아니라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벌어졌던 최고의 역사유적지이자 랜드마크이다.
2. 입춘에 뭐하우꽈
제주에서는 지역에 따라 입춘을 '문전멩질', '새철 드는 날', '새잇절 드는 날' 등 다르게 부르는데 모두 새 절기가 드는 날이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입춘날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복을 맞이하고 잡귀를 예방하는 의미로 좋은 글귀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붙이는데 이것을 '입춘 써붙인다' 또는 '입춘축 붙이기'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입춘대길건양다경'을 써붙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글씨 대신 '돌하르방'을 그려서 붙이기도 했는데 이때는 돌하르방에 오방신장의 푸른 옷, 붉은 옷 등을 입혔다고 한다. 또 입춘서 왼쪽 아래 곁에는 '정춘녀'라고 조금 비뚤어지게 작은 글씨로 써놓았다는데, 이렇게 하면 뱀이 나다니지 않는다는 속신이 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입춘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보리뿌리점 보기'는 입춘이 드는 시간에 보리밭에 가서 보리를 세 개쯤 뽑은 뒤 보리뿌리가 있으면 그 해 보리농사가 잘되고 뿌리가 없으면 잘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한다. '키점치기'는 부엌의 화덕 앞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입춘 시간에 키를 덮어 두었다가 입춘 시간이 지난 후 열어보고 좁쌀이 몇 알 있으면 그해 조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다. 또한 입춘 시간에 바람이 많이 불면 그 해 내내 바람이 많아 밭농사가 어려워진다는 믿음도 있었다.
그리고 절기 대한을 지나 5일째 되는 날부터 입춘 전 3일째 되는 날까지 일주일을 신구간이라고 부르는데 이 기간은 지상에 있던 1만 8천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새로 부임한 신들이 내려오기 전 신들이 자리를 비운 기간이다. 제주 사람들은 이때 집안을 수리하거나 이사를 하는데 신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물건을 옮기고 집안을 수리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3. 입춘굿은 축제다
입춘굿은 제주의 심방(무당)이 주관하긴 하지만 굳이 종교와 관계없이 즐거운 축제이다. 행사 전에 기원차롱을 신청할 수 있는데 접수가 되면 차롱에 제물(음식들)을 담아 행사 당일에 심방이 이름을 고하며 안위를 기원해 주고 쌀 점을 봐주기도 한다. 나도 작년에 직관했는데 입춘굿이 끝날 무렵에 차롱 접수자들을 무대에 올라오라고 해서 자신의 차롱을 찾아 심방에게 가면 쌀점을 봐주는 식이었다. 의외로 젊은 층도 많고 참여자가 꽤 많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 상호명 등을 적어서 올리면 심방이 기원을 빌어준다거나(굿청 열명 올림) 소원을 적어 보내면(소원지 쓰기) 제주목관아 춘등에 달아주고 입춘날에 하늘로 올려 보내는 행사도 한다. 차롱과 굿청 열명, 소원지 쓰기는 모두 사전 접수를 받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민예총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보자. 그 외에도 먹거리, 장터, 체험은 물론 타로카드 운세, 그림자극, 입춘그림책 전시 등도 있으니 잔뜩 기대해도 좋다.
작년에 갔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낭쉐몰이, 입춘천냥국수와 막푸다시였다. 평소에는 장식처럼 서있는 낭쉐(나무로 만든 소)가 입춘인 이 날에는 몸을 움직여 목관아를 한 바퀴 돌고 사람들도 낭쉐를 따라나선다. 천냥국수는 목관아 주차장 쪽에서 파는 국수인데 먹는 사람이 많아 대기가 있을 수도 있다. 천 원을 내고 받은 국수는 육수와 면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게 이상하리만치 진짜 맛있었다(거짓말 아니고 이거 먹으러 내년에 또 와야지 했다). 막푸다시는 잡귀를 신칼로 위협해 쫓아내는 것인데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얀색의 커다란 제기(?) 같은 종이로 심방들이 오며 가며 어깨를 쳐준다. 미신이라고는 하나 뭔가 한 해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개운해졌다. (작년에 어땠더라...)
낭쉐를 따라 목관아를 한 바퀴 돌고 국수 한 그릇 먹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쉬고 싶을 때 의자에 앉아 허멩이 답도리, 굿탈놀이를 보면서 깔깔 웃다가 막푸다시를 받으면 봄이 오는 준비는 끝! 이 전통을 지키고 복원하고 이어나가는 사람들에게 고마워졌다. 여태껏 경험한 제주 전통 행사 중 입춘굿이 가장 알차고 재밌었기에 올 수 있다면 추위에 잘 대비해서 꼭 참여해 보기를 바란다. 나도 가고싶다구!
* 소개하지 못한 내용이 많으니 관심있으시면 민예총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
'my JEJU'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동무와 당근 (2) | 2024.02.19 |
---|---|
파종 달력 (feat. 생명역동농업) (1) | 2024.02.15 |
2024 리뉴얼 우당도서관 (3) | 2024.01.10 |
제주의 겨울, 쨍하고 해뜰날은 언제 (4) | 2024.01.09 |
터미널남원식당 (0) | 2023.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