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의 추석부터 걸린 감기가 믿기 어렵겠지만 12월 말이 되어서야 완치되었고, 11월은 신텐치카이뱌쿠슈단 지그자그의 투어 일정으로 마츠야마, 후쿠오카, 도쿄를 갔다오느라 아주 바쁜 일정이 계속되어 글을 쓰지 못했다... 이제 주변 정리가 좀 되고 또 열심히 블로그를 써야지!
자 그럼 제주의 겨울이야기부터.
1. 제주의 겨울은 생각보다 혹독하다
제주에 산지 3년째지만 기숙사에서 일터만 왔다 갔다 했던 당시에는 못 느낀 것, 바로 제주의 겨울은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그때는 연말이면 작게 이벤트도 하고 직원들 송년회도 하고 친목회가 여럿 있었기에 즐겁기도 하고 바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이벤트들은 많아야 한 둘 뿐인 데다 오래된 주택집에서 홀로 보내는 첫겨울이라 스스로도 어떤 겨울이 될지 긴장이 되었다. 비싼 가스비와 추위에 지금의 삶이 싫어지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우선 날씨, 12월이 되고 추워지면서 해를 보기가 어려웠다. 계속 흐리고 비도 자주 오고 지난주부터 바람도 세져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쉬는 날마다 날씨가 안좋아서 빨래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기가 그렇게 해를 보기 힘들다던 영국인가 싶을 정도로. 그리고 자연스레 찾아오는 약간의 우울함과 스산함... 도민들에게 물어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며 원래 이렇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온 자체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서울 기온이 영하 10도일 때 제주는 0도에서 2도 정도인 것 같다. 하지만 제주 바람은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2. 따뜻함을 위한 노력
가스보일러는 방마다 밸브가 있어서 잠글 수 있다. 나도 쓰지 않는 방이 하나 있지만 어차피 문을 열어두고 있고 짐도 쌓여있어서 전체적으로 보일러는 돌리는데 역시 주택이라 외풍이 장난 아니었다. 외풍을 막지 않고 보일러를 돌리니 너무 가스가 빨리 닳아서 일단 창문에 단열 에어캡 10미터짜리를 사서 다 붙였다 (유리에 붙이지 않고 창문 전체를 감싸듯 막았다). 보일러의 경우 실내 모드 말고 온돌 모드로 돌리고 예약시간을 설정해 두면 좀 아껴진다고 해서 해봤는데 너무 추워서 다시 실내모드로 설정했다. 대신 라디에이터 같은 전기난로를 쓰니 훨씬 온기가 돌고 따뜻하다. 보일러를 마음껏 쓸 수 없는 제주에서는 공기를 데우는 난로가 꼭 필요하다. 난로는 흐린 날로 못 말린 빨래 건조에도 효과가 좋았다. 더불어 전기장판도 꼭 있어야 한다. (한전민영화 반대합니다)
12월에만 가스를 4번 불러 20만 원을 지출했다. 눈이 엄청 내리고 추웠던 날이 계속되던 그때는 4일 만에 가스 한 통을 다 썼다 (여름 내내 한 통도 다 안 썼는데 말이다). 난로와 전기장판을 쓰지만 전기세는 다행히도 만 원이 안되었다. 창문에 붙인 에어캡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3. 제주의 눈
제주도의 날씨는 한라산이 있기에 정말 변화무쌍한 것 같다. 제주도보다 높은 위도의 울산 부산만 해도 눈 보기가 힘든데 제주는 더 아래에 있으면서도 한라산이라는 지형적 특징 때문인지 눈이 많이 내린다. 이번 12월에는 집에 10센티 이상 눈이 쌓여서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그 눈사람이 다시 눈에 깔릴 정도로 눈이 많이 왔다. 한라산은 엄청나게 내려서 입산 통제되었고 도로도 제설작업으로 바빴으며 자동차는 체인, 사람은 아이젠이 필수였다. 출근길에 보니 동문시장에서 남문사거리로 가는 아주 약간의 오르막길에서도 차가 미끄러지고 있었다. 나도 마당에 눈을 쓸었는데 그나마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지 않아 이삼일만에 대부분 녹았다. 비가 계속 내리는 것보다 눈이 쌓였다가 녹으면서 흐르는 물이 더 집중적이라 만약 집이 누수에 약하다면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눈이 그치고 하루이틀 뒤, 어느 정도 도로가 정상화되면 한라산 1100 고지에 눈꽃을 보러 가거나 마방목지 등에 썰매를 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도 썰매를 한 번 타보고 싶은데 교통도 만만치 않고 아웃도어형 인간이 아닌지라 아직은 못해보았다. 언젠가 꼭!
이번 겨울에 지인 서너 명이 제주를 떠난다. 신구간이 다가오고 이사 시즌이 되면 누군가는 제주에 남을지 떠날지를 고민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제주의 겨울은 유독 외로움과 고립을 느끼기 쉬운 분위기가 있다. 떠나는 한 명은 버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을 남겼고 또 누군가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제주에 왔다고도 했다. 나는 어떨까. 아직은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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