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그리는 만화 (2)

만화가 김지은

나의 소울메이트 만화가님 한 분을 소개한다.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에 만화 잡지에서 이스트코스트를 보고 반해버린 김지은 작가님. 대중적인 인기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90년대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눈여겨보았을 그녀는 1993년부터 작품 활동을 하던 중 대장암 판정을 받아 2011년 돌아가셨다. 지은님은 다음에 태어나면 음악을 할 거라고 하실 정도로 특히 록음악을 좋아했다. 90년대 중후반이었으니 한참 너바나를 필두로 얼터너티브가 유행했을 터, 지은님의 만화에도 너바나, 스매싱펌킨스, 펄잼 등의 카메오 출연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스매싱 펌킨스의 제임스 이하를 좋아하셔서 그의 모습을 유다에 빗대어 주인공으로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1. 집시의 달, 내겐 너무 작은 연인

김지은 단편집 내겐 너무 작은 연인, 집시의 달

'집시의 달'은 지은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단행본으로 발매되었다. 인디밴드 '집시'의 보컬인 정길이 솔로 제의를 받은 후 일어나는 청춘들의 고민과 방황을 그렸는데 초기 작품이라 온전히 그녀의 작화라는 느낌이 든다. 정길과, 정길이 없는 밴드 멤버들은 방황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함께 하게 된다. 추가로 실려있는 단편 game over, 사랑의 묘약 등의 작품들도 단순한 스토리이면서도 전개가 멋진 작품이다.

단편인 '내겐 너무 작은 연인' 이라는 작품에서는 주인공 양구가 스매싱 펌킨스의 제로 티셔츠를 입고 기타를 친다. 얼터너티브 음악을 연주할 것 같은 팔리지 않는 뮤지션 양구의 앞에 너무나도 작은 요정이 등장한다. 그녀를 만나고 난 후 연주 실력도 좋아지고 표현력도 풍부해지는데 그녀는 어느 날 친구들과 놀고 있는 양구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떠나고 만다. 그녀는 떠났지만 양구는 한층 더 성장한 뮤지션으로 활동을 전념하게 된다. 장편을 향한 발돋움 같은 단편이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2. 이스트코스트

 

김지은 작품 이스트 코스트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이스트코스트'. 나 역시 이 작품으로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미국 힙합 분류의 하나에서 이름을 따온 이 작품은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의 삶을 기본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남들과 다른 아시아계 혼혈 2세로 태어나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주인공 카이는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살인청부업자의 길을 걸으려 한다. 그런 자신을 순수하게 좋아해주는 여자친구 선일, 유일한 친구였다가 사이가 틀어져버린 친구 스파이크, 길거리에서 만난 한국인 소년 JJ 등과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JJ가 후에 뮤지션이 된다. 귀여운 얼굴의 프런트맨이 되어 펑크 밴드로 인기를 얻게 되고, 이후 틴스피릿 작품에서도 간간이 언급되기도 한다. 작품 내에 음악적인 비중은 적은 편이나 주인공 카이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3. 틴스피릿

김지은 유고작 틴스피릿

작가님의 유작이 된 틴스피릿. 기존 작품들은 록밴드에 관련된 이야기였다면 여기서는 소속사가 있는 아이돌밴드를 꿈꾸는 5인이 등장한다. 재능을 타고난 아이,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슬퍼하는 아이, 노력하는 아이 등 현실에 있을 법한 다양한 캐릭터가 나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데뷔를 하기도 전에 이 작품은 미완으로 끝이 났다. 틴스피릿이라는 제목, 분명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에서 따왔을 것이다.

그녀는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표출하며 끝까지 원고를 했을 것이다. 오늘이 6월 3일, 그리고 작가님이 잠든 날이 2011년 6월 2일이라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묘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책을 들춰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