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그리는 만화 (3)
지난 글에서는 만화책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애니메이션 위주로 좋아하는 작품을 떠올려보았다.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써보겠다. 만화 속의 음악이 상상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면 애니메이션은 실제 음악이 구현되니 잘 표현하면 큰 장점이 된다. 영상에 있어 음악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1. BECK
만화책으로는 보지 않았고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BECK. 사실은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난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이 아마 완결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완전한 결말이 아닌 중반까지만 만들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페스티벌 장면이 기억나는 마지막인데... (이후에 미국 투어를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틀렸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2000년~2008년까지 연재를 했고 애니메이션은 2004년에 나왔다. 주인공인 다나카 유키오가 벡이라는 강아지를 기르는 천재 기타리스트 류스케를 만나면서 록음악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음악을 한 적도 없는 유키오는 서툴지만 임팩트 있는 목소리로 팀 내 프런트 퍼슨으로 노래를 하고 곡도 쓰고 사랑도 하고 성장도 한다. 그야말로 유키오의 일대기를 통해 표현되는 록음악의 향연이다.
비틀즈의 I've got a feeling과 오프닝을 맡은 밴드 Beat Crusaders의 follow me를 커버한 곡도 좋고 류스케의 동생 마호와 달밤에 듀엣으로 노래하는 moon on the water도 좋다. 하지만 나의 원픽은 역시 'Slip Out'. 너바나와 오아시스의 중간 어딘가쯤에 있는 듯한 분위기의 이 곡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극중 유키오가 작사 작곡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제로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OST를 맡았던 10-feet의 타쿠마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Little More Than Before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페스티벌의 마지막 곡이라는 점, 류스케가 총알 자국으로 가득한 문제의 기타로 휘감기는 솔로 파트도 곡에 뭔가 모를 찌릿함을 가져온다. 그야말로 유키오의 음악과 청춘을 표현하는 곡이어서 한창 많이 들었었다. 나도 유키오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함께.
이 애니메이션의 감독은 코바야시 오사무인데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기타도 치는 사람이라 그 관심사로 이후 야자와 아이의 파라다이스 키스도 감독했다고 한다. (NANA가 아니고?)
2. NANA
나나는 정말 선풍적인 인기였다. 2000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이 만화는 야자와 아이의 작품으로 내 남자친구 이야기, 파라다이스 키스 등 패션계 쪽으로 유명했다. 당시를 생각해 보면 트렌디하고 귀여운 그림체가 돋보였던 것 같다. 내가 봤을 땐 눈은 크고 팔다리는 가늘고 길쭉한 현실에서 없을 비율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나나를 본 이후, 나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오자키 나나와 고마츠 나나.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은 도쿄로 상경하는 기차안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또 우연히 같은 집에 함께 살게 된다.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동경하고 빈자리를 채워주며 각자의 꿈을 키워나가는 성장 드라마...로 시작했고 점차 연애와 연예가 부각되는 내용으로 바뀌어 가고... 실제로 일본의 많은 뮤지션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지그자그의 류야도 엄청 좋아한다고 밝혔다. 요네즈 켄시의 보컬로이드 활동명인 하치도 이 영향이라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목걸이형 라이터, 패션, 로킹호스 발레리나 슈즈 등은 물론 나나가 피우는 담배 세븐 스타까지 유행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였다.
애니메이션은 2006년에 제작되었고 BECK과 마찬가지로 매드하우스에서 제작했다. 오자키 나나의 성우는 박로미가 맡았고 노래는 츠치야 안나가 불렀다. 사실 노래는 실사판에서 나카시마 미카가 부른 Glamorous Sky가 훨씬 유명하지만 애니메이션의 OST도 나쁘지 않다. 이 작품은 실현된 음악이 좋은 것 보다 음악을 매개로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스토리가 좋다. 개인적으로 내용 전개는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아서 후반부로 갈수록 잘 모르겠다는 느낌. 연재를 마치지 못하고 휴재 중이라고 하니, 언젠가는 완결이 날 수 있을까. (안될 듯)
3. 봇치더록!
나나가 그 시절의 최고 인기였다면 봇치더록! 은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화이다. 주인공 고토 히토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기 어려울 정도의 소심한 여학생으로 활기찬 앞날을 예상하며 기타 연주를 시작한다. 늘어가는 실력에 비해 여전히 혼자(=히토리)인 주인공은 유튜브에 기타 동영상을 올리고, 길에서 우연히 결속밴드의 드러머 니지카가 말을 걸어오며 함께 밴드를 하게 된다.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 (=아지캉)의 곡을 모티브로 작업한 작품인데 주인공의 성인 고토는 아지캉의 보컬 고토 마사후미의 성에서 따왔다. 12화 엔딩곡인 '転がる岩、君に朝が降る'(구르는 바위, 너에게 아침이 내린다) 는 아지캉의 원곡으로, 밴드 보컬인 키타의 목소리가 아닌 히토리의 목소리로 커버했는데 그것이 너무 좋았다. 히토리의 감정이 너무 잘 전달되니 성우분이 노래로 표현을 잘한 것일지도. 그리고 좋아하는 또 한 곡은 'ギター と孤独と蒼い惑星'으로 가사와 곡의 궁합이 절묘하게 좋다. 물론 다른 곡들도 좋은데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 감동이 한층 더 커진다. 다만 나의 경우 히토리의 하이톤과 빠른 속도의 텐션이 맞지 않아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결속밴드 자체로 라이브 행사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일본 밴드의 팬이라면 애니메이션 곳곳에 숨어있는 흔적 찾기도 재미있을 것이다.
4. 이누오 (犬王)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등을 만든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2022년 개봉작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무로마치 시대에 사루가쿠(흔히 노가쿠라고 부르는 일본 전통 예술) 집안에서 태어난 이누오는 남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에는 표주박을 쓰고 있고 한쪽 팔이 유난히 길기도 하다. 또 다른 주인공 토모나는 비파법사이면서 장님이다. 둘은 음악으로 영혼을 마주하고 예부터 해오던 음악과는 조금 다른 그들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며 종합 예술의 장을 펼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토모나의 록스피릿 가득한 무대였다. 모리야마 미라이가 목소리를 연기했는데 그는 워낙 음악과 예술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중저음의 보컬이 토모나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고 곡도 좋았다. 이누오의 경우 밴드 여왕벌의 보컬 아부짱이 맡았는데 전문 성우는 아니지만 현실에서 보이는 자유분방한 그의 행보와 캐릭터의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이 뒤에 더 붙여 카우보이 비밥, 사무라이 참프루, 언덕길의 아폴론 등을 만든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다음에 더 자세하게 쓰기로 했다. 음악을 주제로 만든 만화가 아니라 오프닝, 엔딩, 삽입곡들이 좋은 만화와 영화도 너무 많으니 말이다.
'LIKE LIK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드 당신이 해주지 않더라도 (0) | 2023.06.25 |
---|---|
고양이의 보은 (1) | 2023.06.18 |
명탐정 코난 극장판 1기 - 시한장치의 마천루 (1) | 2023.06.14 |
음악을 그리는 만화 (2) (1) | 2023.06.03 |
음악을 그리는 만화 (1) (2) | 202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