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가마쿠라~도쿄 여행(2)
* 2024/12/23, 24, 25, 26, 27
* JR요코스카선 이용
* 날씨 구름이었다가 맑음. 완전 따뜻하나 바닷가는 바람 조심.
전날 새벽까지 이어졌던 지그자그 뒤풀이로 피곤했지만 오늘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기에 눈이 번쩍 띄었다. (원래는 지독한 야행성이지만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아침형이 된다) 조식 먹고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남아서 잠시 요코하마 아레나 갔다 오기.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ㅋ
체크아웃하면서 가마쿠라가는 길을 검색해 봤는데 이럴 수가, 내가 타야 하는 JR요코스카선에 인사사고가 발생해서 대폭 지연된다는 소식이었다. 요코하마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안정이 되면 갈까도 했지만 가마쿠라 일정도 바빴기에 그냥 출발하기로 했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고쿠사이 호텔을 지나가는데 우리 한줌단 두 분이 앉아계신 것을 발견! 반가운 마음에 한 시간 수다 떨고 바이바이 인사를 나누고는 열차를 타러 갔더니 다행히 정상적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슬램덩크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 등 최근 가마쿠라 관련 작품들을 많이 접하게 된 것을 계기로 드디어 가마쿠라에 가게 되었다. 도쿄의 아래쪽 바닷가에 위치한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는 일본 최초의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진 곳. 고대의 절과 아름다운 바다, 소박한 마을 사이로 달리는 에노덴이 낭만을 들이붓는 곳이다. 이날도 외국인 관광객이 엄청 많았다.
체크인 시간이 남아서 역 근처를 쭉 구경하면서 쓰루가오카하치만궁으로 올라갔다. 토리이를 보니 어제 본 지그자그 생각에 눈물이 났지만 신사 자체에는 큰 흥미가 없는터라 한번 훑어보고 나왔다.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짐도 있어서 일단 체크인을 하러 가기로. 마을을 좀 걸어보고 싶어서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굿모닝 자이모쿠자.
이번 숙소는 굿모닝 자이모쿠자(Goodmorning ZAIMOKUZA). 가마쿠라의 해안가는 길게 뻗어있는데 그 중 하나의 해변인 자이모쿠자에서 걸어서 0분 거리인 곳이다. 공동욕실을 쓰는 게스트하우스 느낌의 숙소로 크리스마스 당일이라 어떠려나 싶었는데 만실은 아니었던 것 같고 조용했다. 처음에 입구를 못 찾아서 두바퀴를 뱅뱅 돌고 나서야 카페처럼 생긴 곳(계단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체크인을 해주었다. 조식 먹을 시간대를 선택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꽉 찬 이층 침대 너머로 보이는 드넓은 바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오는 게 아닐까.
1층 침대에 TV와 테이블, 냉장고, 옷걸이 등이 있고 2층은 오롯이 자는 곳인데 2층 침대 옆에도 콘센트와 조명이 있어서 편했다. 1인이 묵을 경우 숙박비가 반값이 되는데 1층 침대를 앉거나 짐을 놓는 공간으로 사용하게 돼서 베딩이 조금 아까웠다. 그렇다고 2명이 와서 묵기에는 너무 좁을 듯.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청소도 잘 되어있는 편인데 내가 묵었을 때는 어떤 커플의 여성분이 세면대에 물건을 늘어놓고 단독으로 쓰고 있어서 좀 그랬다. (불편하지는 않았다만...) 티백차와 타월, 샴푸, 린스, 바디워시 등은 기본으로 제공되었다.
방에 가방을 던져놓고 에노시마로 걸어가면서 구경해보기로 했다. 반짝반짝, 예뻤다. 예전에 키무라 타쿠야도 여기서 서핑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역시나 이 추운 겨울에도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마쿠라 배경의 만화책인 요시다 아키미의 '러버스 키스'에 등장하는 주인공 후지이의 서핑 장면을 떠올리며 걷고 또 걸었다. 제주와도 비슷한가, 제주도 그러고 보니 아름다운 곳이었지 등의 웃긴 생각도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익숙한 곳이 나왔다. 앗 여기다 여기! 서태웅! 그가 자전거를 타던 슬램덩크 신장재편판 2권표지! ㅋㅋㅋㅋ
지금 비교해보니 디테일이 다르네.. 아쉽다. 저 블록이 엄청 길어서 포인트를 찾지 못했는데 실제로 어떤 분은 책표지와 배경을 겹쳐 사진을 찍고 있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태웅이는 볼 수 없었다 한다... (이젠 진짜 슬램덩크 멤버들이 실존 같아...)
가마쿠라코-코-마에역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이날은 적은 편이었을 듯한데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고 관리자도 있었다. 에노덴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도로에도 나와서 셔터를 누르는데 차가 많이 없는 곳이긴 해도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역시나 슬램덩크의 추억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감격적인 곳이다.
해가 지고 이대로는 에노시마까지 못 걷겠다 싶어서 코코마에에서 에노덴을 탔다. 에노시마는 연말 시즌에 맞춰 일루미네이션을 하기에 일부러 저녁에 들렀다. 에노시마역에 내려서 섬으로 들어가는 대교를 건너야 했는데 저녁이고 바닷바람이 불어 조금 추웠다.
에노시마는 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신기한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걸어서는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하니 상행 전용 에스컬레이터가 구역별로 있는데 전부 다 탈 수 있는 패스도 있고 구역별로도 탈 수 있었다(설명이 어렵네요...). 나도 걸어가다가 조금 힘들어서 한 번 탔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터널 같은 곳을 지나가면 위에 도착해 있다. 편하긴 해도 전혀 낭만이 없다. 웬만하면 구경하면서 걸어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만 너무 힘이 들면 아예 꼭대기까지 편하게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천천히 구경하는 게 나을 듯하다.
배고프고 추워서 뜨끈한 라멘을 먹으러 가게에 들어갔다. 대교를 다시 건너와 역으로 가기 전에 있는 하레루야라는 라멘집이었는데 양도 많고 맛있었다. (모든 라멘이 그렇듯 약간 짬)
숙소 가려고 역에 갔더니 에노시마 패스가 있었다. 어떤 패스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에노시마 한정이라서, 에노덴이나 가마쿠라 지역을 통합해서 만들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저녁 바닷가도 걷고 싶어서 하세역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었고 일찍 잠들려고 했으나 밤사이 강풍이 불어서 창문이 덜컹거렸다. 바다가 너무 가까운 낯선 곳에서의 강풍 소리가 조금 무서워서 잠을 아주 푹 자지는 못했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보이는 풍경은 역시나 좋았다.
여행 한정 아침형 인간이라 조식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바닷가를 걸어보기로 했다. 역시 바다는 추웠다. 누군가는 일찍부터 서핑을 나가고 누군가는 모래사장에 밀려온 조개껍질을 줍고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오붓하게 산책하는 노부부도 있었다. 일상에서 묻어나는 행복이 보이는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나의 현실 자각도 함께... 급 마음이 쌉싸름해졌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밥 주세요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작년에 나의 텃밭에 심은 라벤더는 1년 동안 이발 안 한 더벅머리가 되었는데 화분에 심어져 있는 이곳의 라벤더는 너무 예뻤다. 소재가 있으면 뭐 하니... 난 그런 감각이 없어서 너무 슬펐다. 밥은 딱 가정식 한 상. 밸런스도 좋고 맛도 좋았다. 시라스동을 못 먹어서 아쉬웠는데 여기서 맛도 보고 가지와 곤약무침, 샐러드와 생선구이 등도 맛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다 먹은 후 체크아웃하고 하세데라와 대불을 보러 걷기 시작했고 날씨가 또 너무 좋아져서 커피가 당겼다.
커피를 쫓아 들어간 카페는 '위드 가마쿠라'. 나무로 둘러싸인 멋진 곳이었다. 식사도 같이하는 곳이라 내가 들어가니 아직 식사는 불가하다는 안내를 해 주었고 저는 커피만 마시러 왔습니다 했더니 앉으라고 했다. 창가를 포기 못 하고 뜨거운 햇볕아래 자리를 잡은 후 아이스라떼를 마셨다. 커피는 고소했다. 이곳의 서비스는 전통적이거나 친근하지는 않았고 다분히 현대적인 쿨함이었다.
하세데라(하세절)에 도착. 천 년이 넘은 세월을 보냈는데 관리가 아주 잘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둘러볼 곳이 많았고 풍경도 좋고 조용하고 따뜻하고... 평화롭다.
(하세데라정보> https://www.hasedera.jp/ko/)
하세데라를 나와 가마쿠라 국보인 대불을 보러 갔다. 가는 도중 만난 닌자 샵. 슈리켄 하나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샀다.
대불이 있는 고토쿠인도 입장료가 있다. 현금만 가능하니 꼭 지참하시길.
대불은 원래 사당 안에 있었는데 자연재해로 건물은 무너지고 그대로 불상이 노출되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니 진짜 컸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뒤통수가 뚫려있는 것 발견! 50엔을 내면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데 갈까 말까 진짜 고민하다가 돈 내고 들어갔더니,
이런 구멍이 뚫려있었다. 나름 신기하긴 했으나 이것 말고는 볼 게 없었습니다...
슬슬 도쿄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어 가마쿠라역으로 갔다. 걸으면서 또 골목골목 구경. 실제로 마을 사람들보다 관광객을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로컬인 듯 아닌 듯한 묘한 도시였다.
가마쿠라는 이번에 여기저기 많이 봤는데 더 길게 와서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었다. 흡사 마을사람처럼 유유자적으로. 그리고 겨울보다는 역시 봄이나 여름이 좋겠다. 다시 온다면 반바지에 슬리퍼 끌면서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산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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