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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켄의 LIFE 30주년 축하합니다

by 유체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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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시부야의 왕자님 오자와 켄지小沢健二

처음 그를 알게 된 것은 2007년 경 플립퍼스 기타의 트리뷰트 앨범을 통해서였다. 아니 그전에 '유희열의 음악도시'에서 시부야케이 음악을 소개해주던 코너에서 이름을 들었다. 그렇지만 제대로 음악을 듣지 않고 세월은 흘러, 2016년 경 우연히 오자와 켄지의 솔로 라이브 앨범을 접하고 첫눈에 빠져버렸다. 이후 HMV와 북오프를 뒤져 플립퍼스 기타와 솔로 앨범, DVD 등을 다 구매했다. 마침 2017년은 활동이 없던 이후로 19년 만에 새 싱글을 발표한 흐름과 방송 복귀(?), 라이브도 다시 하게 되어 리얼 타임으로 그의 팬질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에 관해서라면 물불안 가렸던 나, 왜 그가 그렇게 좋았을까. 그는 음악 속에서 소년이었다가 청년이었다가 때로는 누군가의 사랑이었다. 타고난 인기쟁이구나, 그렇게 그는 시대의 대변인이 되었다.

현재의 오자와 켄지.

 

 

1. 플립퍼스의 camera talk

1989년에 첫 앨범을 발표한 플립퍼스 기타는 당시 5인조로 출발했지만, 결국엔 오야마다 케이고(현 코넬리우스)와 오자와 켄지의 2인조로 활동했다. 첫 앨범 'three cheers for our side ~ 海へ行くつもりじゃなかった(바다에 갈 계획은 없었다)' 은 가사가 모두 영어로 된 3분 안팎의 짧고 발랄한 기타 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양 음악이 어색했던 당시의 리스너들에게 이 음반은 꽤 이슈였던 것 같다. 누군가는 스쿨밴드 같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이것이 일본음악의 미래다(?) 같은 느낌도 받았다고. 그들의 진정한 인기몰이는 1990년에 발매한 2번째 앨범은 'camera talk'였다. 이 음반으로 일본 디스크 대상에서 최우수 앨범 뉴아티스트상도 받고 왕성한 활동을 하였는데, 음악뿐만 아니라 그들의 패션과 글은 물론 평범은 거부하는(?) 행동까지 젊은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성지 시부야를 대변하는 아티스트로 급부상, 음악도 시부야계라는 장르로 분류되곤 한다. 시부야계는 생각보다 많은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묶여 있어서 음악적 특징이라기보다는 그런 분위기(?)를 칭한다고 생각한다. (시이나링고는 스스로를 신주쿠계라고 얘기했고 시모키타자와계나 키치조지계 등도 생겼다,,, 웃기게도 뭔가 분위기를 알 것 같달까) 아무튼, 플립퍼스 기타는 그렇게 90년대 일본 음악에 한 획을 그으며 순조로운 듯했으나 무언가의 이유로 3번째 앨범 'DOCTOR HEAD'S WORLD TOWER -ヘッド博士の世界塔-(헤드박사의 세계탑)'활동 중 해산했다. (소문에는 오야마다와 오자켄이 한 여자 때문에 싸웠다던가...)

플립퍼스 기타의 음반을 보면 음악만큼 트렌디하다. 지금봐도 촌스럽지 않고 자유로우며 섬세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듬뿍 담긴 느낌. 첼시부츠, 보더티셔츠, 베레모 등의 패션이 유행할 정도로 당시 문화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카메라 톡의 앨범 자켓. 위 가장자리 사진의 왼쪽이 오자켄, 오른쪽이 오야마다.

 

* camera talk 앨범의 대표곡 '恋とマシンガン', 기타팝의 선두주자입니다

 

 

2. 부기백의 다양성

 

플립퍼스 기타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오자와 켄지는 이후 1993년 1집 '犬は吠えるがキャラバンは進む'를 발표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음반은 넷플릭스 영화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에서 오자켄을 좋아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챠다라파와의 콜라보곡인 '今夜はブギー・バック'이 대박 나고 그 곡이 수록된 두 번째 앨범 'LIFE'로 90년대 음악의 대표주자가 된다. 라이프 앨범은 오자켄 그 자체라는 느낌.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전해져 듣고 있으면 나 역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정말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앨범인 데다가 꼭 앨범 통째로 순서대로 들어야 제 맛이 납니다. (오자켄의 모든 음반이 그런 듯. 플립퍼스도 그렇고)

이후 오자켄은 피아노와 베이스로 이루어진 재즈풍의 '球体の奏でる音楽'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갔으나 돌연 활동 중지, 이후 전자음악의 요소를 넣은 'Eclectic', 전 곡이 연주곡으로 되어있는 앰비언트 스타일의 'Ecology of Everyday Life 毎日の環境学' 등의 앨범을 몇 년에 한 번씩 내기도 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컴백의 신호탄으로 2017년 '流動体について'을 발표하고 방송과 투어를 재개했다.

그리고 올해, 今夜はブギー・バック탄생 30주년을 맞이하였다. (라이브 이야기는 밑에서) 부기백은 정말 쿨하고 멋진 곡이다. 그 누가 어떤 요리를 해도 좋은 곡. 명곡입니다.

 

* 빔스(BEAMS)의 40주년 기념 프로젝트 영상. 부기백의 음악을 그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과 문화, 뮤지션들로 표현했는데 이게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 산토리에서 만든 호로요이 광고. 부기백과 tofubeat의 수성을 콜라보했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곡!

 

 

3. 부도칸, 신키바, 토요스 그리고 날려먹은 요코하마

오자켄과 사랑에 빠진 이후로 호시탐탐 라이브 스케줄을 기다렸다. 2018년 5월, 드디어 일본부도칸에서 라이브를 하게 되었고 2,3일 양일 티켓을 모두 구해서 갔다 왔다. 나의 오자켄 첫 라이브에는 예상치 못하게 미츠시마 히카리가 무대에 등장해서 온전히 들었어야 할 오자켄의 목소리를 70프로밖에 듣지 못했다. (끝나고 메일로 감상문 보내라는 오자켄에게 미츠시마상 싫지 않지만 오자켄의 목소리로 노래 듣고 싶다고 써서 보냈다 큭...) 어떤 곡에서는 눈물도 나고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들.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되던 행복함이었다.

2019년 11월은 신키바와 토요스에서 작은 규모의 밴드셋 라이브하우스 공연이었다. 안타깝게도 신키바의 티켓만 있던 상황, 하지만 신키바의 공연장에서 토요스의 티켓을 소량 판매하고 있어서 운 좋게 득템! 그리고 스차다라파가 게스트로 깜짝 등장해 완전체로 부기백을 들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게 되었고, 2020년 5월에 예정이었던 요코하마에서의 라이브는 열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오자켄은 이 콘서트를 1년 뒤로 미룬다는 큰 결심을 하고, 20년의 티켓으로 21년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상황은 길어져 1년 더 미루게 되었고 2022년에 콘서트는 열렸지만... 한국에서는 당시 일본으로 입국을 할 수가 없어서 난 결국 가지 못한 채 티켓은 기념품이 되고 말았다ㅠ

 

부기백 베이비의 앨범 디자인 겸 기념 스티커. 오자켄과 스차다라파 3인.

 

올해 4월 부기백 30주년 기념으로 스차다라파와 함께 'boogie back baby'라는 싱글을 발표했고 5월에는 (주로 라이브를 5월에 하나 보네) 투어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8월 31일! 라이프 앨범 30주년 재현라이브가 열린다는 소식. 라이프 앨범 녹음에 참여했던 스카파라의 브라스팀, 힉스빌의 3인 (기타의 나카모리상, 코구레 신야, 코러스 마시로 메구미), 스차다라파 등등이 그대로 모여 음원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제주-도쿄 직항이 뚫리고... 이것은 운명인가 일단 티켓 응모했다. (1차는 떨어지고 2차 응모 중) 과연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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