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먹자 황금향
나에게 만감류의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귤이다. 가장 보편적이라 접근하기 쉽고 맛없는 경우도 거의 없고 옆에 있으면 무한대로 손이 가는 가성비 좋은 귤. 그런데 제주에는 귤의 사촌들이 참 많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귤 따기가 시작되면 겨울 내내 먹다가 레드향도 먹고 천혜향도 먹고 한라봉도 먹는다. 그러다 봄이 되면 카라향이 나오고 여름이 되면 하우스귤이 등장하다가 8월이 되면 풋귤이 나오고 가을부터 황금향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고 한다. 겨울 귤은 생각보다 일찍 끝나는데 1월만 돼도 끝물이라고 했다. 레드향과 한라봉, 천혜향은 겨울에서 봄사이에 옥신각신 과일가게의 매대를 차지한다. 한라봉은 맛이 없고 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3월 이후에 먹으면 정말 맛있고, 반대로 늘 맛있던 천혜향은 올해엔 유독 농익은 맛이 나지 않아 아쉬웠다.
1. 여름 황금향이 이렇게 맛있다니
제주에 살고 있으니 육지의 가족들에게 가끔 과일을 보낸다. 육지에서 사는 것도 제주에서 가는 걸 테니 사실 똑같긴 할터, 그래도 현지에서 선물 받으면 좀 더 맛있는 기분이 들려나. 이번에도 과일시장에 들른 것은 가족에게 귤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하우스귤과 황금향이 메인으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나름 실패할 확률이 적은 하우스귤을 선택해서 택배로 보냈다. (실제로 아주 달고 맛있었다) 그러다 옆에 있는 황금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사장님이 시식을 권한다. 제법 향도 좋고 맛도 있어 보여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나에게 여름 과일은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크기가 주먹만 한 선물용부터 귤만한 가정용도 있었는데 가격은 귤보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정말 착즙주스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맛에 반한 나는 가정용의 작은 황금향을 10개 만 원에 사 왔다. 후숙이 필요 없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원하게 까먹으니 정말 주스가 필요 없다. 말랑하고 껍질도 얇아서 손으로 까도 되지만 칼로 네등분해서 꼭지부터 벗겨 먹는 게 훨씬 수월하다.
정보를 찾아보니 황금향은 가을부터 제철이라고 하는데 여름에 나오는 황금향은 비닐하우스 재배라고 한다. (그래서 당도가 좋았나 보다) 추석을 겨냥해 선물할만한 상품이 필요해서 만든 것 같은데 천혜향과 한라봉의 교배종이라는 말도 있고 일본에서 교배한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커다란 과육은 먹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지금 먹고 있는 황금향이라면 단연코 원탑이다. (납작 복숭아(대극천)가 나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2. 하우스귤, 레몬귤, 풋귤
황금향 칭찬을 엄청 했지만 사실 하우스귤도 아주 맛있다. 여름에 맛볼 수 있는 귤이 있어서 너무 좋지만 겨울 제철 귤보다야 비싼 건 사실이다. 그래도 제주에 살고 있으니 가정용으로 조금씩 자주 사 먹을 수 있어 그것은 좋다. 이번에 보낸 선물용은 3킬로에 2만 5천 원 정도였고 동문시장에서 오전에 보내면 당일 발송되어 보통 1-2일 후에 받을 수 있다. 동문시장이나 오일장에는 너무 많은 과일가게가 있어 어디를 고를지가 어려운데 근처에 사는 지금 몇 군데를 여러 번 이용해 보며 나만의 단골집을 찾는 것이 목표이다.
얼마 전 친구를 따라 올바른 농부장에 갔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은 물론 플리마켓처럼 다양한 제주를 선보이는 곳이다. 거기서 발견한 레몬귤이라는 신기한 아이가 있어 조금 사보았다. 알맹이는 귤처럼 작고 껍질은 레몬 같고 맛은 귤과 레몬의 장점을 섞은 듯했다. 그냥 먹어도 맛있었는데 껍질 까기가 조금 힘들고 과육이 작은 편이라 청을 담가보았다. 뽀득뽀득 씻어서 설탕에 절여 냉장고에 며칠 둔 다음 탄산수에 타서 먹어보았다. 설탕을 적게 넣었음에도 단맛만 많이 나서 뭔가 심심한 기분, 레몬즙을 몇 번 슉슉 섞으니 제법 맛있었다. 특히 절여져 있던 레몬귤이 맛있다. 하지만 이미 달콤한 과일은 청보다는 잼이 어울리겠구나, 그래서 레몬이나 풋귤같이 시큼한 아이들로 청을 담그는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풋귤은 초록색의 덜 익은 귤이고 청귤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실 풋귤과 청귤은 다른 것으로 알고있다. 청귤이라는 품종이 따로 있어서 풋귤로 부르는데 청색이라서 보통 혼용하는 듯하다. 풋귤은 익은 귤보다 몸에 좋은 영양소가 풍부하지만 그냥 먹을 수는 없어서 보통 청을 담가먹는다. 일본이 원산지인 영귤과 풋한라봉도 청으로 담글 수 있는데 영귤은 씨가 있어 자를 때 아주 불편하니 웬만하면 풋귤이나 풋한라봉이 더 좋겠다. 풋귤은 8월 초부터 따기 시작하고 벌써 예약을 받는 곳도 있으니 올해 청을 담그려면 지금부터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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