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7월 7일
오늘은 하루종일 흐리고 시원하고 습한 날씨였다. 며칠 묵은 피곤함에 아침까지 늦잠을 잤다. 사실은 이대로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을 기다리는 식물들을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제법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고 축 처진 난 화분에 물을 주었다. 습한 공기가 방 안에 가득 차있어 서큘레이터를 돌리고 인센스를 피웠다. 가볍게 물을 한 잔 마시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습도라면 비가 오지 않아도 빨래는 마르지 않을 테지만 비가 오지 않으니 빨래를 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 때문에 맑은 날과 쉬는 날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무언가를 원할 때 여유롭게 할 수 없는 것은 꽤나 짜증 나는 일이다. 하지만 타협이 필요할 때도 있다.
1.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멍하니 채널을 돌리다가 한 영화채널에 시선이 멈춘다. 웬일로 대낮에 시네마천국을 방영해 준다. 나의 눈물 버튼 중 하나. 원래 눈물이 많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분명 훌쩍거릴 거다. 그래, 오늘은 이거다.
영화 시네마천국은 1988년 작품으로 주세페 토르나토레감독이다. 아마 감독보다 음악을 만든 엔니오 모리코네가 더 유명할 것이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일생을 다룬 내용이지만 나이를 불문한 우정, 꿈, 사랑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감정을 다루는데 그 안에 영화라는 매개체가 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토토는 둘도 없을 알프레도라는 친구를 사귀고 인생을 느끼고 배우고 성장한다. 그리고 엘레나를 만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이후에 자신의 꿈을 이룬다. 어린 시절이 그대로 남아있는 극장도 시대의 흐름을 못 이기고 철거되고 소중한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알프레도마저 죽은 후 자신에게 남겨진 과거의 검열테이프를 보며 추억에 잠기는 토토의 모습. 그 한 사람의 서사가 완벽한 영상과 연출과 음악으로 어우러져 그야말로 완성이 된다. 하지만 그 외에도 간간이 나오는 조연들의 개그코드나 극장에서 상영하는 필름의 내용으로 시대성을 알 수 있는 부분도 재밌는 점이다. 영화가 재미를 넘어 당시 상황을 잘 반영하는 하나의 영상 자료로서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영사기사를 하지 말라고 할 때도, 고향을 떠나라고 할 때도, 그 외에 모든 대사가 인상 깊다. 마스터피스는 역시 시대를 탓하지 않는다.
사람은 흔히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앞을 보고 나아가는 게 물론 좋지만 과거를 추억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자신을 만들어 주었고 좋으나 싫으나 그런 시간을 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과거에 얽매이는 것도 과거를 발판 삼아 미래를 나아가는 것도 단지 '과거'라는 단어 하나의 몫은 아닐 것이다. 토토는 과거에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영화로 자신의 꿈을 이루었고, 알프레도가 엘레나의 소식을 비밀로 했기 때문에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엘레나의 소식을 들었다고 해도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삶은 자신의 선택과 불가항력의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니 이탈리아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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