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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JEJU

오늘의 제주 - 나만의 파도를 찾아서

by 유체 202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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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파도를 찾아서, 제주 물놀이

어렸을 때 여름이 되면 가족끼리, 때로는 이웃과 사촌과 모두 함께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그것이 즐거웠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잔뜩 넣고 보슬보슬한 아프로 헤어스타일의 수영모를 챙기는 과정은 아주 귀찮았다. 피부가 약해 몸에 선크림을 잔뜩 바르지 않으면 수포가 생기는 것도 싫었다. 물론 네 명의 딸들을 챙겨야 하는 부모님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연례행사로 매년 우리를 챙겨 바닷가로 데려가 주었다.

그러다 하루는 혼자 바닷가에 앉아 놀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다가온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물 속에서 앞 구르기를 하게 되었고 그 공포로 인해 이후로 바닷가에 들어가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수영을 배우겠다는 결심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문화센터에서 강습을 통해 이루게 되었고 그때 물에 대한 공포는 줄어들고 재미는 늘어갔지만 여전히 물은 무섭다. 이제는 제주에 살고 있으니 바다에 좀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긴 찰나 여름휴가를 온 가족 방문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평일 오후의 곽지해수욕장. 사람이 제법 있다.
평일 오후의 곽지해수욕장.

1. 곽지 해수욕장

원래는 비양도도 보고 일몰도 볼 심산으로 금능해수욕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주차장이 만차여서 뱅글뱅글 돌다가 곽지로 목적지를 옮겼다. 곽지 해수욕장은 제주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애월읍에 위치하고 있다. 곽지의 한 쪽에는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가득한데 공간을 분리해 두어서 마주칠 일은 없지만 그래서인지 금능이나 협재처럼 놀 수 있는 모래사장이 엄청 넓지는 않다. 바다는 조금만 걸어 들어가도 허리까지 왔는데 그 날은 바람이 엄청 강한 날이라 큰 파도가 밀려오면 내 키를 훌쩍 넘어섰다. 십수 년 만에 처음 바다에 들어가는 나로서는 여전히 무섭고 파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어느 정도 적응되니 재미가 생겼다. 특히 바다 안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이 너무 아름다웠다. 구름을 피해 살짝살짝 얼굴을 드러낸 태양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수면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최근 들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물론 바닷속에 박혀있는 현무암을 밟을 때마다 발바닥은 조금 아팠지만 물이 적당히 깊은 게 오히려 놀기 좋았고 샤워실, 주차장, 화장실, 주변 카페, 벤치 등 여러모로 부대시설 동선이 편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차장은 유료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한적하고 쾌적한 주차가 가능했다. 

 

일몰의 곽지 해수욕장. 구름이 많다.
일몰을 기다리는 곽지 해수욕장

 

2. 신흥 해수욕장

곽지를 갔다온지 이틀 뒤, 물 맛을 알아버린 나는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제주 동쪽의 신흥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혼잡하고 유명한 해수욕장보다는 프라이빗하고 한적한 곳을 더 좋아하고 물놀이 중에서는 스노클링에 관심이 있던 터라 나지막하게 유영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해변가도 있지만 너무 아무것도 없으면 위험할 수도 있고 곤란하니 샤워실과 화장실, 주차장만 있었는데 내가 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마을에서 관리하는 것 같은 느낌에다 마을 사람들만 와서 노는 나지막한 해변이었다. 바로 앞에 '오후 다섯 시 두 가지 착각 조차도'라는 큰 베이커리 겸 카페가 있어 허기도 달래고 커피도 마시며 숨을 돌리고는 수경을 챙겨 바다로 들어갔다. 꽤 깊이 들어가도 허벅지까지 물이 차올라 수영하기에는 낮았지만 곽지에 비해 바닥이 매끈하고 파도가 약해서 스노클링 비슷하게 떠있을 수는 있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수영할 수 있었고 여기라면 공포심없이 마음껏 물놀이할 수 있겠다 싶어 너무 좋았다. 얼굴을 짭짤한 바다에 넣은 채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있는 기분은 여태껏 느껴온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신흥 해수욕장. 모래사장이 곱고 넓다.
신흥해수욕장. 나는 여기서 노는 게 딱 맞았다.

 

 

바다는 무섭고 아름답고 무한한 공간이다. 온갖 생물들이 살고 온 지구를 떠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하는 곳이다. 나라는 한 인간은 이제서야 동북아시아의 조그마한 제주도라는 섬의 한 바다에 몸을 담그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자연이 주는 사치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대가 없이 누리는 자연과의 교감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바닷가로 날 이끌어준 가족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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