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자음악단의 공연을 보았다
처음 들었던 건 꽤 오래전에 '꿈에 들어와'라는 곡이었다. 나른하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좋았다. 이후 다른 곡들도 들었지만 꿈에 들어와 이외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곡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제주 공연 일정을 보자마자 의심의 여지없이 가야겠다는 느낌이 들어 티켓상황과 버스 편을 알아보았다. 화요일과 목요일에 각각 동쪽 카페동백과 서쪽 요이땅삐삐라는 곳에서 한다고 하길래 인스타그램으로 보이는 분위기가 동백이 더 맞을 것 같아 동백에 가기로 했다. 휴무와 마침 겹치기도 했다.
1. 서울전자음악단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둘째아들이자 시나위 신대철의 동생이자 드러머 신석철의 형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지겹겠지만 신윤철을 소개하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 소개에 무뎌졌을까 아니면 싫을까 아니면 영광스러울까 궁금하다) 초기에는 3인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중 드러머가 문샤이너스의 손경호였고) 지금은 4인조이면서 신윤철을 제외한 멤버가 다 바뀐 것 같다. 어제 본 멤버는 기타 보컬에 신윤철, 기타에 최준하, 베이스에 김엘리사, 드럼에 강대희가 있었다. 실력에 있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오히려 얼마나 좋은 연주를 들려줄까 기대되었다. 사이키델릭한 기타톤의 연주에 얹어지는 신윤철의 어눌한(?) 보컬이 특징이라면 특징, 소문대로 안정적인 멤버들의 연주가 너무 좋았다.
9시에 버스를 타러 가야해서 혹시 일찍 나가야 할까 봐 문 앞에 앉았는데 신윤철의 기타가 정면으로 보이는 나름 상석이었다. 덕분에 기타 플레이를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신윤철의 기타는 손가락을 얹고만 있는데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타를 쳐왔을까...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과는 반대로 기타에서는 폭발하는 에너지가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편하게 기타를 치는 건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최준하의 기타는 앞으로 바빠질 것 같았지만...) 리듬 파트도 훌륭한 연주였지만 좋은 실력 이상으로 밴드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는 그의 기타는 또 다른 영역인 것 같다. 형인 신대철과는 사뭇 다른 음악스타일인 것도 왜인지 이해가 될 것 같고... 듣자 하니 한 번 해체했다가 다시 결성했다고 하는데 앞으로 계속 좋은 활동 해주기를. 내 귀가 노화했는지 중간중간 폭발하는 게이지를 소화할 수가 없어서 다음에 제대로 된 사운드로 스테이지에서 마주하고 싶었다.
* 아름다운 선율과 대비되는 감성의 뮤직비디오, '꿈에들어와'.
2. 버스로 카페동백까지
그렇게 무사히 갔다오긴 했지만 사실 버스로 왕복이 가능한지에 대한 불안이 조금 있었다. 카페동백은 동백동산습지센터의 바로 앞에 있는데 그곳을 가려면 제주시에서 함덕으로 가서 습지센터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그 버스는 하루에 5-6대 운행하는 아주 레어한 버스였고 공연 시간 근처로는 맞출 수도 없었다. 아니면 터미널부터 선흘 웃가름까지 한 번에 가서 12분 정도를 걸어가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산간 도로를 밤에 10분이나 걷는 게 괜찮을까하는 걱정. 요이땅삐삐의 경우 늦게까지 버스가 있지만 편도 2시간이 넘고 시작시간도 20시라 고민했다. 안 갈까도 고민했지만 올여름 공연을 한 번도 보지 않아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결국 동백으로 결정하고 예매했었다.
제주터미널에서 해녀박물관 방면의 260번을 타면 50분만에 선흘까지 간다. 17시 40분 버스를 타니 선흘 웃가름에 18시 30분에 도착했다. 비 예보가 있어 더 걱정했지만 다행히 비가 흩뿌릴 뿐 쏟아지지는 않았다. 너무나 한적하고 집도 거의 없이 사방이 풀숲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아마 습지센터 주변이라 그런 것 같다) 직접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고 의외로 펜션이나 풀빌라 등의 숙소가 군데군데 있어 불도 켜져 있었다. 공연은 21시 10분 전에 끝나서 잠시 어슬렁대다가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대체로 어둡기는 했다. 미리 챙겨둔 헤드터치로 불을 밝히니 아주 유용했다. 걷는 동안 서너 대의 차가 지나갔고 버스정류장까지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토토로가 나올 것만 같은 한적한 숲 속의 정류장에 시간 맞춰 도착한 버스를 타고 (달리는 버스는 정말 고양이 버스처럼 격렬했다) 제주시에 진입하자 익숙함에 마음이 놓였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라이브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해서 영혼이 텅비어가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날 것의 느낌이 좋다. 서울전자음악단은 음악을 한창 좋아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나는 늘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밴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음악에 몰두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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