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고 조용하고 구성도 알찬데 입장료 무료인 김만덕 기념관
2023년 6월 29일 장마인데도 불구하고 이틀째 맑고 푸른 날이었다. 물론 어제처럼 바람은 엄청나서 나가면 분명 덥고 머리가 산발이 되겠지만 햇빛이 소중하니 길을 나섰다. 조금만 걸어도 후텁해져서 어딘가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김만덕 기념관을 지나고 있었고, 그동안 가봐야지 하면서도 못 갔던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이 기념관은 나눔과 베품의 표상인 김만덕을 기리기 위한 장소임과 동시에 그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그래서 3층은 상설관으로 김만덕의 일생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고 2층은 여러 가지 나눔과 봉사에 관련된 자료들이 있다. 곳곳에 쉴 수 있는 공간들도 너무 좋고 깨끗해서 개인적으로 대만족이었다. 좀 더 일찍 와볼걸 그랬다.
1. 김만덕은 누구인가
1739년, 김만덕은 원래 양인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12세에 부모가 사망한 후 기생집에 거두어져 행수기생이 된다. 하지만 늘 자신의 신분을 되찾고 싶었고 관아에 가서 양인 신분을 회복시켜주면 평생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겠다고 하며 요청을 거듭하여 신분을 회복하게 된다. 이후 육지와 물자가 오가던 항구(지금의 건입동) 옆에 객주를 차려 상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게 되고 점차 규모가 커져 최고의 거상이 된다. 그러다 57세가 되던 해, 계속된 흉년으로 곡식도 없고 제주 인구마저 감소되기 시작하자 김만덕은 전재산으로 쌀을 구입하고 모두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한다. 김만덕이 나눈 쌀의 양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주의 모든 사람들이 열흘간 살 수 있었다고 하니 대단한 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식이 정조에게도 알려져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인 의녀반수에 오르게 되고, 소원을 말해보라는 정조에게 궁궐을 구경하고 금강산에 가고 싶다고 요청한다. 정조의 은혜로 당시 여성으로는 꿈도 못 꿀 금강산 유람을 한 후 제주로 귀향하였고 1812년 7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2. 그 때도 살기 어려웠던 제주
제주는 삼다도라 하여 물, 바람, 여자가 많은 섬이라 알려져 있는데 전시실에 가니 다른 의미로 인상 깊은 문구가 있었다. '산 높고 골 깊으니 물의 재앙이요, 돌 많고 땅이 척박하니 가뭄의 재앙이요, 사방이 큰 바다이니 바람이 재앙이다'라는 구절이었다. 비행기가 있어서 왕래가 어렵지 않고 육지에서 보낸 택배도 3-4일 만에 올 수 있는 지금도 왠지 이해가 되는 구절이다. 예전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를 떠나 육지로 향했고 인구가 줄어들자 진상품도 줄어들어 결국 인조 7년부터 약 200년간 출륙 금지령을 시행했다고 한다 . 제주에서 육지로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의 출륙은 더 엄해 육지인과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제주의 여성이자 상인인 김만덕이 제주를 떠나 한양으로 가서 궁을 구경하고 금강산까지 가겠다고 말한 것은 그 어떤 금은보화보다 값진 것이라 생각한다.
3. 김만덕의 흔적과 이모저모
김만덕의 묘는 원래 건입동 고으니모루에 있었지만 제주시 인구가 늘어나며 주택과 공장이 많이 생겨 사라봉에 모충사를 건립해 김만덕의 묘를 옮겼다고 한다. 여태껏 모충사를 지나가면서 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모충사는 한말 의병들과 항일투쟁가, 그리고 김만덕의 넋을 기리고자 내외도민 17만 명이 성금을 모아 사라봉에 세운 사당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의병항쟁기념탑이 있고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탑이 있고 김만덕의 묘가 있다. 나중에 한 번 가봐야겠다.
얼마 전 뉴스에서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적은 곳이 제주라고 들었다. 호텔이나 관광업 등에서 여성 인력이 많이 필요한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하던데 그것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농업은 척박한 땅으로 생산성이 낮고 어업은 험한 바다라 위험성이 높기에 남녀노소 모두가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신분이나 성별의 구분이 사실상 중요치 않았다. 그래서 그때도 평등과 공정이 제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였고 특히 제주 여성은 농사도 짓고 해녀로도 일하며 경제적으로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제주의 여성이 거상이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멋지다) 그리고 기념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김만덕 객주'라는 음식점이 있다. 말그대로 김만덕의 객주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그때 당시의 흔적도 볼 수 있고 음식도 맛있다.
4. 나눔이 있는 삶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뻗어나간다는 뜻으로 추사 김정희가 김만덕의 선행을 듣고 후손에게 써준 글씨라고 한다. 2층에 있는 나눔 실천관은 나눔에 대한 정의와 방법에 관한 자료가 있고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오늘은 조용했지만 배움 프로그램이 수시로 열리고 있다. 나는 여태껏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눈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눔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라고 하는데, 나도 나누는 행복을 언젠가는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제주에서 찾고 있는 것은 어떻게 돈을 벌고 생활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과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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