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스테핑스톤 페스티벌 STEPPING STONE FESTIVAL (STST)
- 2024. 8.16~17
- 제주 함덕 해수욕장
-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teppingstonefestival/
음악 페스티벌을 가장 최근에 간 것이 언제였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아마 2019년 핀란드의 플로우 페스티벌이었던 것 같다. 이후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많은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나도 자연스럽게 공연장과 멀어지게 되었구나 싶었다. 대면 공연이 다시 열리게 되었지만 사람이 많은 곳을 기피하게 되고 현재 유행하는 음악 세대와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어, 이제는 보기 힘든 뮤지션의 내한 공연이나 일본 뮤지션 원정 공연만 갔었는데 라인업도 좋은데 무료인 데다 제주에서 열리는 스테핑스톤 페스티벌에 처음 가보기로 했다. (두근)
제일 보고 싶었던 타지마 타카오 씨와 마이언트메리, 87dance, 까데호가 나란히 금요일에 있어서 금요일은 통으로 휴무를 신청했고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스쿠비두는 토요일 저녁이라 일을 마치고 갔다. 여건이 된다면 근처에서 1박을 하면서 새벽 수영도 하고 공연도 보며 놀면 좋았겠다 싶었는데 다른 분 후기를 보니 모기와 더위에 계속 시달렸다고 하더라. 아무튼 전날 비가 와서 조금 걱정했는데 이틀 내내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다.
동문시장에서 버스를 타면 함덕해수욕장까지 대략 1시간이 걸렸다. 정류장에서 내려 해수욕장으로 가는 동안 쿵짝쿵짝 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첫 순서였던 파라솔 웨이브의 막바지에 도착했더니 여전히 햇빛이 강렬해서 뒤쪽에 있는 큰 야자수 밑동 그늘에 앉아 마이언트메리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돗자리나 의자에 앉아 음식도 먹고 술도 마시며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마이언트메리가 나왔다. 십수년 알아왔지만 라이브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한국 모던락 1세대 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언니네도 해체했고 델리스파이스도 활동이 뜸한 요즘, 인지도는 그에 못 미칠지언정 원조가 주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목소리도 예전 그대로였고 그 노래들을 듣던 과거의 내 모습도 떠오르는 데다 오랜만에 느끼는 야외의 사운드가 낭만으로 가득 찼다.
앗 타지마상이다! 카메라를 들고 스태프와 함께 여기저기 둘러보는 듯했다. 무대도 찍고 바다도 찍으시는 듯. 이번에는 예상대로 솔로로 기타 하나 들고 오셔서 그런지 뭔가 가벼워 보였다. 오늘 무대 기대할게요!
(이 와중에 만약 지그자그나 완즈가 온다면 사진 찍고 사인 받고 선물 주고 악수하고 다 할 수 있을 텐데라는 불순한 생각을 했더랬다)
87dance와 까데호의 차례에서는 그들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 올라갔는데 그게 엄청 멋져 보였다. 무대에서 본인들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 관중석에서 날리고 있다면 너무 뿌듯하고 힘이 날 것 같아서 지그가 페스에 온다면 다른 건 못해도 깃발은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이언트메리가 끝나고 다음 순서인 소울딜리버리 전에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함덕 해수욕장의 화장실이 정말 열악했다. 주차장 쪽과 비치 입구 쪽 모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못 가고 지도에서 화장실 검색. 무대에서 소노벨 쪽으로 더 걸어가면 공용 화장실이 하나 있어서 가보니 다행히 아주 괜찮았다. 화장실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소울딜리버리는 끝에 조금 봤는데 재즈와 소울 베이스에 롹킹한 부분도 더해져 나쁘지 않았다.
올라운더 리스너인 지인에게 추천받은 팔칠댄스, 처음 음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요즘 유행하는 밴드 같네 하며 떨떠름했더랬다. 하지만 왠지 오늘 좋아질 것 같아서 미리 음악을 저장해 갔는데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이번 페스티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밴드가 되었다.
내가 돌아왔다~라고 크게 소리친 보컬 비더블루와 기타분은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했다. 리듬파트의 연주와 그루브가 좋았고 보컬의 리버브 빵빵한 목소리와 무대 표현이 좋았다. 마침 해가 지고 하늘과 바다가 물들고 바람이 서늘해지는 현장 분위기와 곡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게 큰 이유였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노래들이 다 좋았다. 요즘은 4DL이라는 곡에 빠져있고 캔디는 왜 음원이 없을까 아쉬워하는 중이다. 요즘 나오는 밴드들이 칠링 하고 소울스럽고 그루브 있는 비슷한 팀들이 많은 것 같은데 여태 들어본 팀들 중에선 제일 좋은 것 같아 앞으로도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예전 곡들을 들어보니 확실히 최근 EP가 가장 취향이었다. 가사 부분에서 좀 더 곡이랑 잘 맞아지면 더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
전 무대인 팔칠댄스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다음 차례인 타국에서 날아온 중년아저씨 타지마상의 솔로 무대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기우였음을, 30년이 넘는 음악의 에너지를 내가 감히 걱정하다니. 순식간에 본인의 분위기로 휘어잡으시고 관객과 호흡하며 연주와 노래를 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멋있었다. 그야말로 단 하나, 땀이 흐르고 머리가 헝클어져도 전달하고자 하는 음악에의 열정. 接吻도 들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기타와 하모니카, 루프스테이션 등 비록 솔로지만 지루하지 않게 연주하면서 관객 호응도 능숙하게 유도하셔서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다. 딱 봐도 그를 잘 알지 못하는 관객이 대부분인 듯했는데 모두가 그를 환대하는 표정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타지마상에게 좋은 추억으로 간직되었길 바란다.
까데호도 잠시 봤다. 좋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음악을 접한 건 처음이었는데 막차 시간이 다 되어 일찍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음악적인 노련함은 느껴졌지만 막 취향은 아니어서 버스정류장을 향해 서서히 걸어 나왔다는...
이렇게 첫날을 충만하게 마무리했다. 좀 더 여운을 느끼고 싶지만 내일 아침에 일하러 가야 한다니ㅠㅠ 축배는 내일 들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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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일을 마치고 오후 6시가 되어 버스정류장으로 튀어갔다.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7시 10분 예정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버스가 늦게 와서 7시 15분쯤 도착. 전날 무대들이 5분 정도 딜레이 되었기에 오늘도 그러기를 바랐는데 웬걸, 오늘은 조금씩 일찍 시작했다ㅠ
모래사장을 막 달려서 무대 앞에 도착하니 더위 때문인지 조금은 힘들어 보이는 주현 씨와 종현 씨가 여전히 롹앤롤을 하고 있었다. 진짜 얼마 만에 보는 갤익인가, 무대를 마주하자마자 나의 몸은 그냥 흔들리고 있었다. 그 어떤 달콤한 멜로디와 부드러운 템포의 곡보다도 역시 원초적인 비트가 주는 무아지경의 쾌감이란. 그걸 느끼게 해주는 것이 그들의 음악이다. 내가 있던 쪽 반대편에서는 슬램도 하면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곡 '언제까지나'를 따라 부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가... 그들이 언제까지나 지치지 않고 음악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갤익을 보내고 여운을 느끼며 앉아있는데 스쿠비 두 Scoobie do가 세팅을 시작했다. 유독 제주와 인연이 있는 그들, 아마도 주최 측의 무한 애정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벌써 두 번째 본다. 신곡이 안 나오는 요즘 셋리스트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했는데 여름 느낌이 나는 곡들을 많이 연주했다. 일단 나의 최애 멤버인 나가이케 씨가 보이는 쪽에 섰고 그들은 여전히 최고의 라이브를 보여주었다. 다만 늘 하는 그들의 무대매너가 오늘은 왜인지 쇼처럼 보였던 게 조금 아쉬웠는데, 불특정 다수 자유로운 관객들과의 작은 거리감이려나 싶었다. 하지만 무대가 끝나고 주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진짜 잘한다, 너무 재밌다 등의 칭찬 일색이었던 걸 보면 언제나 수준급의 라이브를 보여주는 능력치는 변함없을 것이다.
CHS도 조금 보다가 또 막차 시간이 다 돼서 슬금슬금 빠져나왔다. 킹스턴 루디스카를 못 보는 건 조금 아쉽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이로서 나의 페스 세포는 조금씩 살아날 것 같고 또 어디론가 갈지도 모르겠다. 역시 재밌어. 한 가지 바뀐 것이라면 이제는 혼자보다 여러 명이 오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스테핑스톤 페스티벌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관중의 카메라 수가 가장 적고 자신의 쾌락에 가장 충실하며 무대에 마냥 맹목적이지 않은 이기적인 관객들의 자유로운 페스티벌이라고 정의하겠다. (뭔말이니...)
이런 좋은 페스티벌을 무료로 즐기게 해 주신 모든 주최 주관 스태프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즐거웠습니다. 내년 20주년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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