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꽃 심기
우연히도 주택에 살게 된 나는 또 우연히 텃밭 두 곳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사했을 때가 3월 초라 맥문동처럼 생긴 풀이 한 구석에 심어져 있는 것 빼고는 흙이 정리되어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꽤나 큰 텃밭을 가지고 있는데 꽃과 작물, 나무, 다육식물 등 아주 다양하고 건강하게 가꾸고 계신다.
사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삶은 나와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태생이 게으른 탓인지 아니면 자연은 자연이 알아서 자라게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아직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흙만 있는 채로 둘 수는 없다는 마음에 무언가를 심어 보기로 했다. 한쪽은 꽃, 한쪽은 작물. 과연 어떻게 될까.
1. 어디서 사야할까
일전에 호기심으로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키우고 있고 신고니움을 수경재배하고 있지만 밭을 가져본 적은 없다. 씨를 뿌릴지, 모종을 심을지 무엇을 언제 심어야 할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올 한 해는 맨땅에 헤딩한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을 심어 보기로 했다. 우선 작은 밭에 꽃을 심고 길쭉한 밭에 모종을 심기로 정하고 모종을 사러 제주시 민속 오일장에 갔다.
제주시 민속 오일장은 매달 2일과 7일에 열리고 오일장 중에서는 제주시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한림과 세화에도 오일장이 있다) 안 파는 것이 없을 정도로 농수산물 외에 의류나 생필품도 있고 새도 있다. 식당도 많고 요깃거리도 많이 팔고 있어서 허기질 일은 없다. 물론 나무와 모종, 씨앗을 파는 곳도 있다. 봄의 오일장은 모종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붐벼 아주 활기차 있었다. 꽃이름과 월동 등을 물어보고 둘러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꽃이 너무 많고 하나같이 다 예뻤다. 고민 끝에 3종의 꽃을 2 포트씩 샀는데 개당 2~3000원선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아이보리색의 목마가렛, 보라색의 오스테오펄멈(데모루), 그리고 분홍빛의 운간초였다. 잘하면 월동을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밖에서 키우면 겨울을 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제주라서 어쩌면 가능할지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오라동에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나무시장이 있다. 이곳은 주로 나무를 많이 팔고 꽃도 있으며 그 외 흙이나 부자재등 원예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다. 굵은 나무보다는 어린 나무들을 주로 파는데 작은 벚나무도 5만 원 이하로 살 수 있고 정원이 있다면 어릴 때 데려와 크게 키우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라동 부근에도 화원이 몇 군데 있다. 꽤 규모가 큰데 나도 아직 들어가 본 적은 없어서 이렇다 할 정보는 없으나 큰 도로변을 따라 여러 군데 있으니 찾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집과 가까운 동문시장에도 파는 곳이 있다. 작물 모종이 더 많은 것 같지만 꽃과 다육도 찾아볼 수 있었다. 현대약국 맞은편 또는 시장 안쪽에도 여러 군데 있으니 구석구석 잘 찾아보자.
2. 부추별꽃, 둥굴레꽃, 괭이밥
아무것도 없었던 흙 밭 한 구석에 맥문동처럼 늘어뜨린 풀들이 있었다. 이사오기 전 주인 할머니가 심어놓았던 것인데 3월이 되자 예쁜 꽃이 피었다. 바로 부추별꽃, 향기부추, 자화부추 등의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 꽃은 아름답고 깨끗하게 피어 햇빛에 반짝이고는 5월이 되기 전에 다 져버렸지만 흙만 있던 밭의 귀한 생명체였다. 사실 그 꽃이 있었기에 다른 꽃도 심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부추별꽃이 지고 4월이 되자 새우란처럼 생긴 노란 꽃이 피었는데 둥굴레꽃이었다. 잎이 길쭉하게 자라고 노란 꽃은 고개를 숙이고 피고 지고 하였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분홍색의 괭이밥이 피었다. 크로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이 하트모양으로 생긴 괭이밥은 고양이밥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실제 고양이가 먹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괭이밥은 소박하고 아담하고 귀여운 꽃이다.
정원을 가꾸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핀란드로 여행 갔을 때 포르보의 루네베리 생가를 봤을 때이다. 집도 너무 좋았지만 7월의 정원이 너무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내가 주택을 짓는다면 정원은 이렇게 가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의 나로서는 택도 없다) 식물을 키우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인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에는 비록 작더라도 나의 정원을 꼭 가꾸어 보기를 바란다는 대목이 있다. 사람이 살면서 자연을 거스를 수 없지만 정원을 가꾸는 것은 자연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식물을 가까이 둔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나의 손길을 바라는 아이를 키우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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