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데이 경주 추억 여행
2025. 05.29
동국대학교 와이즈캠퍼스(구 경주캠퍼스) 위주로 추억 여행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졸업한 학교이기 때문에! 하핫.
내가 본가인 울산에 열흘동안 있게 된 김에, 외국에 사는 대학교 친구가 경주에 와 있는 김에, 문득 오랜만에 경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를 관광하기보다 내가 예전에 시간을 보냈던 대학교와 성건동을 보고 싶었고 친구와 약속을 잡은 후 경주행 기차에 올라탔다.
울산에서 경주로 가는 방법은 크게 기차와 시외버스가 있는데, 기차를 좋아하는 나는 기차를 타고 싶었지만 KTX가 뚫리면서 옛날 경주역은 폐쇄가 되었고 어느 건천군 근처의 시골(?)에 새 기차역이 생겨 있었던지라 시내로 들어오는 시간이 약 50분이 걸려서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시외버스도 시간당 1대 정도라 만만치 않은 시간대. 아침에 결정하지 뭐, 하고는 잠들었고 일찍 출발할 수 있게 된 나는 여유 있게 기차를 탔다.
태화강역에서 경주로 가는 기차는 총 네 가지. 제일 저렴한 2,700원짜리 누리로와 무궁화, 4,800원인 ITX-마음, 8,400원짜리 KTX-이음이다. 태화강역에서 타고 경주역까지는 두 정거장인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가장 빠른 KTX가 20분에 가장 느린 무궁화가 30분이니 차이는 많지 않았다. 나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저렴한 누리로를 탔다.
예전에는 울산역이라는 이름이었던 태화강역. 이곳도 경주와 마찬가지로 언양에 KTX-울산역이 새로 생기면서 이름을 바꾸고 주로 출퇴근을 위한 편의성 기차역으로 바뀐 것 같았다. 그래도 훨씬 깨끗해지고 세련된 기분. 플랫폼은 아마 4개였던가. 캔커피 하나 사서 이미 대기 중인 기차에 올라탔다.
나는 두 번째 줄에 앉았는데 첫 줄 좌석에는 받침대가 있어서 편해 보였다. 그리고 각 좌석마다 220 볼트 콘센트가 두 개씩 있었다. 가장 저렴한 누리로였지만 좌석도 편하고 깨끗하고 아주 좋았다. 옛날 통일호 생각하면 거의 KTX급임. ㅋㅋㅋ
약 27분 후 경주역에 도착했다. 한국 대표 관광지답게 외국인도 많았고 단체 여행객들도 있었다. 나도 어슬렁어슬렁 역 내를 구경하고 기념품 샵이 있길래 구경하다가 수막새-천년의 미소-마그넷을 하나 구입했다. 그런데 아차 싶어서 버스정류장으로 냅다 뛰었다.ㅋㅋ... 지도에서 검색할 때 시내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찾기 어려웠는데, 보통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버스가 출발했던 경험을 떠올렸고 아니나 다를까 마침 버스가 도착하는 상황. 놓쳤으면 한 시간 기다릴 뻔.
그렇게 51번 버스를 타고 풍경을 구경하면서 동국대학교로 향했다. 버스는 여전히 거칠었다.
원래는 학교로 바로 가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성건동에서 내렸다. 20년 전에 내가 살았던 곳이 성건동이어서 어떻게 바뀌었을지 너무 궁금했다. 오랜만에 만난 성건동은 왜인지 버려진 외곽도시의 느낌이 있었다. 그때가 이른 아침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따뜻한 기운은 없는 술집이 즐비한 대학가의 유흥거리 같은 느낌(실제로 그렇긴 하다만). 큰길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니 주택가가 이어져 있었는데 너무나도 옛날과 비슷해서 마치 타임슬립한 듯했다.
그리고는 학교까지 걸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여름 냄새. 학교로 가려면 늘 이 다리를 건너가야 했다. 나는 이 다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수업시간이 빠듯할 때는 너무나도 먼 거리였다. 지각이 가까워지는 시간엔 같은 동네에 사는 선배나 후배와 의기투합(?)해서 택시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걷기 좋아하는 나는 거의 타지 않았다 훗)
바뀐 듯 아닌 듯. 10년 만에 온 나의 모교. ㅋㅋㅋ.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왼편에 운동장이 있다. 옛날엔 모래 운동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레탄인지 뭔가로 다 정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세워진 무대. 알고 보니 내가 갔던 날이 축제 기간이었다. 또 옛날 생각나네. 축제 때 가수나 밴드가 오면 스쿨밴드가 오프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도 가끔 그랬다. 재학 당시 무대에서 자주 보던 밴드인 훌리건과 현재 10센치의 데뷔 밴드인 해령도 많이 생각났다.
내가 몸 담았던 스쿨밴드는 아우락. 현재는 없어졌다. 처음에 노천극장을 무단 점거해서 동아리방으로 쓰다가 정식 동아리로 인정된 다음에는 운동장 스탠드에 자리를 꾸렸었다. 그 흔적이 아직도 있어서 신기했다(심지어 제일 크다). 경쟁 밴드로 유서가 깊었던 솔메리아는 아직 건재한 듯했다. 무슨 소리라도 들리려나 싶어 한 바퀴 돌아봤지만 일찍이라 그런지 잠잠했다. 당시에 멋있다고 생각했던 솔메리아의 OB드러머분은 잘 지내시려나 ㅋㅋㅋㅋ.
운동장을 나와 원효관으로 올라갔다. 원효관은 주로 인문 계열이 공부하던 공간으로 일문과였던 나도 자주 가던 곳. 아니, 20년 동안 건물 보수도 안 하나 싶을 정도로 엘리베이터가 생긴 거 말고는 변한 것이 너무 없어서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다. 예전에 계셨던 일본인 교수님은 다 바뀌었고 그때 계시던 한국인 교수님도 안 계신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강의실 복도도 여전했다.
원효관 4층 소강당. 여기서 정기 공연을 많이 했다. 정말 그대로구나. 놀랍다 놀라워.
원효관 중정에서 잘생긴 사람 찾는 즐거움이 나름 있었는데... (사진은 없지만) 중정도 예쁜 곳이다. 학교를 찬찬히 보는 동안 이 학교가 이렇게 푸릇하고 괜찮은 풍경을 담고 있었나 하는 의문. 그때의 난 전혀 몰랐던 풍경들이었다.
백로처럼 생긴 아이들이 나무에 엄청 많았다.
창단한 지 얼마 안 된 동아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마땅한 연습 공간도 없어서 몰래 점거했던 노천극장 건물. 그래도 그때가 제일 재밌었는데.
아, 우리 학교는 불교대학교이다. 그래서 필수 과목으로 불교 수업도 있어서 1년인지 1학기인지... 아무튼 정각원이라는 교내 절에 가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학교 상징 동물도 코끼리. 많이 녹슬었는데 관리 좀 하시죠...
내가 학교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녹야원. 여기서 시덥잖고 부끄러운 공연도 많이 했고(ㅋㅋㅋ), 교내 방송에 노래 신청해서 풀밭에 앉아 듣기도 하고, 그냥 시간 나면 앉아 있던 곳이었다. 이날도 축제기간이라 소무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생각이 많이 났다. 나의 대학 생활은 9할이 스쿨 밴드였으니까.
친구가 거의 다 왔다는 얘길 듣고 녹야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때처럼 음악을 듣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나의 선택은 언니네 이발관 3집 꿈의 팝송. 당시에 한국 인디를 정말 많이 들었다. 닥치는 대로 소리바다 같은 데서 음원을 모으고 향뮤직에서 씨디를 샀다. 만날 친구 역시 비슷하게 음악을 좋아해서 더 친해졌었다. 생각해 보니 현재 연락하는 초중고 친구가 없는 나로서는 이 친구가 제일 오래된 친구였다.
원효관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등나무 벤치. 여기도 데크가 생긴 것 말고는 그대로.
도서관 지하에 식당이 있었던 걸 기억하고는 마침 점심이라 학식 먹자고 갔는데 추억에 이끌려 도서관에 들어가 보고 싶은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출입증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친구의 용기로 입구에서 졸업생임을 밝히니 구경하라고 들여보내 주었다. 몇 년 졸업이냐고 물었는데 05년이라고 대답하려니... 거기 앉아있는 학생들 태어나기도 전인 것 같아 뭔가 부끄럽기도... ㅋㅋㅋ...
도서관 내에서 학생들 작품도 전시 중이어서 구경도 하고
예전엔 여기 휴게실이었던 것 같은데 다 열람실로 바뀐 듯. 재밌었다. 여기도 바뀐 건 많이 없었어.
그리고 도서관 지하 식당은 없어졌고... 학생회관 식당으로 갔다.
가장 많이 바뀐 학생회관 식당. 규모도 커지고 메뉴도 많아지고 가격도 올랐다.
학식은 돈가스지. 맛도 여전하고.
경주캠퍼스가 와이즈캠퍼스로 바뀌었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다리를 건너 성건동으로 향했다. 풍경이 너무 좋다. 그때는 당연히만 여겼던 것들.
성건동은 경주시에서 버린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시내와 황리단길을 맛보러 또다시 걸었다.
걷던 도중에 무언가 문화재스러운 곳도 들러서 잠시 쉬고 (어디였더라? 음...)
시내 도착. 친구가 졸속행정을 보여주겠다며 안내해 준 금리단길. 왜 금리단길인가? 금은방이 많은가? 그런 농담.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도시가 문화재인 곳이 사실 잘 없어. 소중한 곳이니까 잘 보존하고 보전해야 해.라고 생각했다.
어린 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떠올리며.
앗 여기가 황리단길이구나. 처음 왔는데 티비에서 보던 거랑 너무 똑같아서 놀람. 너무 엉망일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딜 가나 골목이 주는 포근함.
흐드러지게 핀 장미.
덥기도 더웠고 나의 시외버스 시간도 다가오고 황리단길에서 뭔가를 할 것도 아니라서 터미널 옆에 생긴 스타벅스에서 쉬면서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재밌었다. 본가에서 일주일 동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는데 타이밍이 딱 좋게 경주에서 모두 털어내고 다시 감정 리셋이 가능했다. 이번 여행은 나의 추억이 서려있기도 했고 너무 오랜만이라 아쉬움도 없었고 마냥 좋았던 하루. 즐거웠다.